군대에 있었을 적의 일이다. 오래된 지인을 TV에서 접한 일이 있었다. 생활관 분위기에 휩쓸려 안 보던 쇼미더머니를 보게 되었는데 학원을 같이 다녔던 형의 나오는 것이 아닌가. 형은 뭘 좋아하냐는 내 질문에 “자기는 음악한다”라고 했던 첫인상을 기억한다. 방송 이후로 형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이제는 큰 무대에서 개인 공연도 하는 스타가 되었다. 당시 형의 나이로 28살이었다.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나와서 성공하는 이들의 나이가 대부분 20대 중후반, 늦으면 30대이지 않나.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나이에 어떻게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게 가능한걸까. 나는 내 답을 쇼미더머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공통적으로 본선 생방송 무대가 있고, 본선에 돌입하게 되면 공연과 더불어 출연자들의 스토리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이들의 스토리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낮에는 일용직을 뛰고 밤에는 단칸방에서 벽을 마주보고 랩을 내뱉는 모습이다. 흔히 그들의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일이다. 어린 출연자의 경우 여기에 자퇴가 주로 곁들여진다.
이렇게 보면 이 사람들의 성공이 더 이상 의아스럽지 않아진다. 오히려 그들의 성공이 세상의 이치를 잘 반영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미더머니의 본선 진출자들은 랩, 그러니까 박자에 맞춰 가사를 내밷는 한가지 일의 달인인 셈이다. 그리고 오디션은 언뜻 치열한 경쟁의 장이지만 이면의 실상은 본인이 쌓아올린 시간을 선보일 기회의 장인 셈이다. 승패가 본질이 아니라 인정을 받느냐 못받느냐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프로듀서/심사위원의 존재도 대단히 흥미롭다. 이들은 이미 10년차인 래퍼들을 평가하고 조언을 던져준다. 더 오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음악적인 면에서 터치는 거의 없고, 생방송 무대 준비에 관한 피드백을 더 많이 한다. 그들의 역할이 출연자들이 본인의 가치관과 의도, 스토리가 담긴 자기만의 음악을 무대에서 더 잘 보여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무대 디자이너인 셈이다.
어떤 래퍼들에게 랩 다음은 무대 디자인이다. 그럼 그 다음은 뭘까? 아마도 각자의 길이 있을테다. 스윙스나 도끼를 보면 사업도 그중 한가지 선택지인 듯하다.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것, 잘하고 싶은 것을 따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 본인을 내던지고 자신만의 뜻을 펼치는 것 같다. 얼마나 멋진 삶인가.
그런데 회사 차린다고, 본인 레이블 만든다는 그들 소식이 있고 나면 활동이 거의 없어지는 것 같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유령이 된다. 아마도 다시 그들만의 새로운 시행착오를 쌓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성공했으니 각자의 몸에 베어있는 것 같다. 마치 불문율처럼.
쇼미더머니를 통해 성공의 필요조건을 되새겨본다. 아니, 솔직히 내 짬바에 성공이 뭔지는 잘 모르겠고, 무언가를 잘하기 위한 필요조건을 지레짐작해본다.
어떤 일이든 10년은 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반드시 10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축적이 필요하다라는 말일 테다. 난 사실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 각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정도는 다를테지만 양(quantity)을 먼저 쌓지 않으면 질(quality)도 없다.
10년을 쌓아올릴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김연아, 손흥민, 오타니 쇼헤이 등 운동선수들은 어린시절부터 축적을 시작한다. 그래서 어린시절 = 인고의 시간이고, 밀도 100%다. 정확히 반대의 경우는 일반 직장인인 듯하다. 축적을 위한 노력의 밀도가 낮아지는 만큼 축적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그만큼의 댓가는 지불해야 한다. 결국 시간과 노력의 등가교환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내가 선택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