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노션을 좋아해왔다. 18년 무렵 미국에서 처음 접해 DB 기능도 거의 없었을 때부터 아직까지 요긴하게 쓴다. 매년 메일함에 날아드는 이젠 없는 연 30달러 구독제 인보이스가 팬심의 방증이랄까.
처음엔 노션 특유의 디자인에 눈길이 갔다. 이내 커스터마이저블한 서식에 놀랐고, 직관적인 사용성에 빠져들었다. 데이터베이스 기능이 추가된 이후에는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을 만큼 기록이 쌓여버렸다. 이제 노션의 주된 기능은 데이터베이스 간의 워크플로우와 AI로 옮겨가고 있다.
노션은 아름다운 툴이다.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제품이 진화해온 방향에 있다.
야망을 품은 소프트웨어는 추상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처음 시작한 작은 뾰족한 기능에서 더 큰 시장으로 확장하려면 새로운 기능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추상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언뜻 똑같아 보이는 구조는 더 많은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여러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상위의 구조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는 늘 메타를 고민한다.
그런 면에서 종이와 펜은 소프트웨어가 지향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일테다. 무엇을 적을지, 어떤 형식으로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최근의 노션도 전보다 할 수 있는 일이 한층 더 많아졌다. 이제는 여러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고, 워크플로우를 만들고, AI까지 붙일 수 있다. 대신 처음 보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전보다 훨씬 어렵다. 사용자가 하고자 하는 것이 그만큼 명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용성에는 복잡성이라는 비용이 붙는다. 제품은 자유로워질수록 더 많은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되지만, 동시에 그만큼 어려워진다. 더 큰 야망을 품을수록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야 하고, 그 대가는 결국 어디에선가 치러진다.